재수강하는 건축학개론

건축학개론 재수강 13주차: 내가 이 영화에 공명했던 이유

1andau 2012. 6. 7. 18:33

(주의사항: 이 글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대량 함유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께서는 절대로 읽지 마십시요.)

 

건축학개론에 공감하지 못하는 어떤 사람들은

왜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마치 자기 이야기인 것처럼 생각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묻기도 한다.

내 생각에 건축학개론이 많은 관객들에게 자신의 이야기인 듯한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이유는 

과거의 첫사랑 부분에서 누구에게나 있었음직하게 보편적인 장면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인 것 같다.

 

 

경험에 따라서는 건축학개론이 얼마나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질 수 있는지를 

아래에 인용하는 어느 여성분의 리뷰가 잘 보여주고 있다. 

 

" 꺼져줄래 라고 한마디 툭 던지고 뒤돌아보지 않은 채 지나가는 승민의 뒷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 역시 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중략)....

영화를 보는 내내 내 첫사랑을 생각하며 이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왜 그의 꺼지라는 말에 화가 나는게 아니라 슬펐는지. 왜 그가 그때 그렇게 행동했는지.

마치 내 기억을 끄집어내어 조각조각 이어붙인 영화를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중략)....

그래서 나는 건축학개론이 좋다

." 

 

내가 건축학개론을 좋아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 때문이다.

감독이 내 머리 속의 메모리 장치를 꺼내서 영화의 소재로 삼은 것 같은 희한한 느낌.

 

 

영화의 장면장면들이 내 경험과 유사했던 점들을 꼽아 보자면 이렇다.

 

1) 같은 학교 학생이었거나 같은 수업을 들었던 것은 아니지만,

영화에서처럼 나도 첫사랑 그녀도 대학 1학년이었고 서로 상대가 첫사랑이었다.

 

 

어라... 같은 동네 사네...? 뭐지, 운명적인 것 같은 이 느낌은?

 

2) 우리는 미팅에서 파트너로 처음 만났는데, 영화에서처럼 살던 동네가 같았다.

내 첫사랑 그녀는 어릴 때부터 계속 중곡동에 살고 있었고, 나도 국민학교 시절에 중곡동에서 살았었다.

당시에는 오늘날과 달리, 남자가 여자를 마음에 들어하면 집까지 바래다 주는 것이 관례여서

옛날에 살던 중곡동에 가보고 싶다는 핑계로 바래다 주러 갔었는데

세상에 그녀의 집이 어릴 때 내가 살았던 집의 바로 옆골목에 있는 것 아닌가?

이 넓은 서울에서, 더구나 중곡동만 해도 상당히 넓은 지역인데, 두 집이 100 미터도 안 떨어져 있었으니

서로 운명적인 뭔가를 느꼈다고 해서 누구도 우리 보고 오버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거다.

나중에 농담삼아 서로 이런 이야기도 했었다.

'기억을 못해서 그렇지 우리는 소꿉친구였던 거 아닐까?'

 

 

아빠는.... 엄마는....

 

3)  영화에서 편부 편모 슬하라는 가정환경의 공통점이 나오듯이,

나도 첫사랑 그녀도 모두 아버지들께서 명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서도

어려운 집안 때문에 고시공부를 하지 못하시고 곧바로 취직해야 했었기 때문에 

고시에 한맺힌 분들이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영화에서처럼 비슷한 가정환경은 우리가 급격히 친해진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4) 그녀만 그랬는지 아니면 당시의 유행 패션이었는지는 기억 안 나지만

내 첫사랑은 어깨에 심을 넣어 각지게 만든 상의를 즐겨입고 다녔다.

앞에서 수지의 떡대 이야기를 했었는데

아마 그 때문에 수지와 내 첫사랑 그녀가 비슷한 구석이 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

 

 

 

5) 그 당시 많은 여대생들이 그랬지만,

내 첫사랑 그녀도 영화 속 수지처럼 굽없는 단화를 예쁘게 신고 다녔다.

 

6) 내가 영화 속 수지를 좋아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흰색 옷을 입은 장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내 첫사랑 그녀도 수지처럼 흰색 옷을 곧잘 입었으며, 그게 기막힐 정도로 잘 어울렸다.

 

 

 

7) 그리고, 하얀 스커트 밑으로 보이는, 약간 휘었으면서도 종아리가 예쁜 오다리.

 

8) 영화 속 빈집과 같은 둘 만의 아지트가 있었다.

우리의 아지트는 이대 앞의 레몬(LEMON)이라는 아주 조그마하면서도 예쁜 카페였다.

처음 만난 날 저녁 식사부터 헤어지는 날 이별하기까지 모두 레몬에서 했었다.

딱 우리를 위해 존재했던 곳인지, 그녀와 헤어지고 두어달 뒤에 찾아가 봤더니 그새 없어져 버렸더만.

 

9) 우리는 처음 만나서 행복하게 사귀다가 한번 헤어졌고

두달쯤 이별한 후에 다시 만나서 조금 더 사귀다가 두번째에 결정적으로 헤어졌다.

처음 헤어지고 났을 때 내가 먹지도 못하는 술 퍼마시고

친구들 앞에서 진짜로 그녀를 '썅년'이라고 욕했었다.

영화에서 썅년 대사가 나왔을 때 내가 얼마나 뜨끔했는지 아무도 모를거다.

(두번째에 완전히 헤어진 이후로는 그녀를 욕했던 적이 없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썅년이었다며~~

 

10) 미팅에서 우연히 만났을 뿐이고 학교가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두 사람은 서연과 승민의 그 강남선배처럼 공통으로 알고 있는 절친한 친구가 있었다.

그녀의 여고 시절 절친 베프가 공교롭게도 나와 같은 대학 서클 동기생이었다.

강남선배 같은 악역은 아니지만,

이 친구는 우리의 (두번째) 만남과 헤어짐에 아주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영화 속의 강남선배와 유사한 역할을 했다.

 

 

 

11) 나는 연애문제를 친구와 상담하지 않는 주의라서 납득이 같은 친구가 없었지만

내 첫사랑 그녀는 우리 관계를 자신의 친구들에게 시시콜콜히 상담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여자 쪽에 납득이가 있었던 셈이다. 그것도 한명이 아니라 여러명.

어느 친구가 '너네 그럴 거면 헤어지는게 낫겠다'라고 조언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이후로,

나는 내가 사귀었던 모든 여친들의 동성친구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버릇을 가지게 됐다.

 

 

 

12) 내가 영화 속의 주요한 지명인 바로 문제의 그 개포동에 살고 있었다.

영화와 반대로 우리는 남자가 강남에 여자가 강북에 살았던 거다.

그러나 우리 사이에 강남 강북간의 갈등 같은건 전혀 없었다.

당시만 해도 강남북의 차이가 지금처럼 그렇게 크지 않았고,

나도 오피스텔은 커녕 차조차 없던 그냥 보통 대학 1학년이었다.

 

 

오늘 니 생일 아냐? 1111?  ...... (잊어버린 척 했었지만, 승민이는 우리 사이를 기억하고 있었구나...)

 

13) 15년이 지나도 서연의 생일을 기억하는 영화 속의 승민처럼

25년이나 지났지만 나도 첫사랑 그녀의 생일과 처음 만난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무섭쥐? 남자에게 첫사랑이란 그런 거다.

 

 

 

14) 나도 그녀 집에 초대받아 가서 앨범 사진을 구경했던 적이 있다.

당시에는 집에 초대해서 이렇게 자신의 어릴 적 앨범을 보여 주는 것이

부끄러운(?) 어릴 때 모습을 터놓고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보여주는 상대가 특별한 사람임을 의미한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아직도 내 첫사랑이 앨범 사진을 보여주며 했던 농담이 기억에 생생하다.

"나는 나체 사진이 없기 때문에

(당시 남자 아이들이 돌잔치 때 고추가 보이는 사진을 한장씩 찍어서 앨범에 보관했던 관습을 가리킴)

너한테 앨범 보여주는데 거리낄 것이 전혀 없어."

 

 

 

15) 첫사랑 그녀와 내가 결정적으로 이별하게 된 이유는, 영화 속의 승민과 똑같이

별것도 아닌 사소한 일로 화가 났던 내가 그녀에게 상처를 주면서 이별을 고해 버렸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내가 왜 그렇게 철없이 옹졸하게 성질을 부렸는지 미안하고 가슴이 아프다.

그리고 헤어지자고 이야기하던 과정에서

그녀의 고운 얼굴에 나타났던 그 당혹감과 서글픔과 안타까움이 담긴 표정이

영화 속에서 승민에게 꺼지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수지의 표정과 똑같았다는 것은 전에도 말했던 바 있다.

아마 이것이 내가 건축학개론을 나의 경험과 동일시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16) 내가 기억하는 첫사랑 그녀의 가장 예뻤던 모습은

둘이 함께 연대 축제에 놀러갔을 때 나를 기다려 주던 모습이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정말 여자에 대한 예의가 없는 놈이었던 것 같은데,

연대 축제 도중에 연대에서 열렸던 고등학교 연합동문회에 잠깐 들려야 했기 때문에

그녀 보고 연대 도서관 앞에서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 혼자만 동문회 장소로 갔었다.

아마 요즘 아가씨들 같으면 혼자 내버려 뒀다고 화내고 가버렸을 테지만

내 첫사랑 그녀는 30분이면 돌아온다던 내가 거의 1시간이 다 되어서야 돌아올 때까지

연대 도서관 앞 벤치에서 단정하게 앉아 나를 기다려 주고 있었다.

돌아오는 내가 보이자마자 꽃처럼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기까지 하면서.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때 그녀의 모습은

기억에 너무나 또렷하고, 눈부시게 예쁘고, 고맙게 느껴진다.

나처럼 그렇게 예의없는 놈을 그토록 착하게 기다려줬던 아이에게

맘에 안 드는 사소한 거 한두가지 있다고 그처럼 잔인하게 헤어지자고 말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죽일 놈인거 틀림없다. T_T

 

그래서, 건축학개론에서 수지가 공대 앞 벤치에 앉아 기다리는 장면이나

곱게 화장하고 첫 눈 오는 날 빈집에 앉아 기다리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연대 축제에서 나를 기다려 줬던 첫사랑 그녀가 자꾸 연상되어 미쳐버릴 것만 같은 심정이다.

 

 

건축학개론의 첫 눈 오는 날 빈집 씬은 정말 명장면이다

 

17) 나는 스무살 때부터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 상대를 불문하고 말을 쉽게 놓지 못한다.

며칠 전에 나보다 12살 어린 초면의 30대 초반 남자와 술자리에서 나눴던 대화다.

 

상대: 제가 띠동갑으로 어리니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말씀 놓으시지요.

나: 에이... 제가 이 대학 선배도 아니고... 둘 다 성인인데....

상대: 아닙니다. 그냥 편하게 말씀하십시요.

나: 그게 아무리 그래도...

상대: 아.. 참.. 내... 말씀 놓으셔도 된다니까요.

나: 아... 그... 그럼... 다음에 뵐 때부터 제가 말을 놓겠습니다.

상대: (어색)

나: (어색)

 

 

아... 갑자기 막 놓으라 그러면... 제가 못 놔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여자와 만나서 내가 먼저 말을 놓았던 적이 한번도 없었고

항상 여자 쪽에서 참다 못해 먼저 말을 놓자고 이야기하곤 했었다.

서연이 승민에게 말 놓으라고 갈구는 장면에서 나는 정말 강하게 동질감을 느꼈다.

 

 

 

18) 다른 강의에서 첫사랑 그녀가 느닷없이 나를 찾아온다는 설정이 남성 판타지라고 했지만,

놀랍게도 나는 그와 비슷한 경험을 실제로 했던 적이 있다.

첫사랑 그녀는 아니지만 서른 살 무렵 상당히 진지하게 만나다 헤어진 여친이 있었는데

몇년쯤 지나서 갑자기 나에게 전화를 걸어온 것이었다.

 

나: *때르르릉* 여보세요?

그녀: 오빠, 저 XX에요.

나: 응? 니가 갑자기 왠 일이냐? 잘 지내?

그녀: 네, 오랜만이에요. 오빠 혹시 그새 결혼했어요?

나: (얘가 몇년만에 전화해서는 뚱딴지 같이...) 아니, 아직. 너 결혼하니? 청첩장이라도 보내 주려고?

그녀: 아뇨. 오빠 그때는 아직 계약직이셨는데 어디 취직하셨어요?

나: 응... 다행히 XX에 자리 잡았어.

그녀: 오빠, 저랑 결혼해 주세요!

나: 뭐~~? +_+

그녀: 나 이대로는 도저히 못 살겠어요. 올해 안에 결혼해야 돼. 나랑 결혼해 주세요.

나: 느닷없이 그게 무슨 소리야? #_*

.... (중간에 여차저차는 생략)....

그녀: 그럼 일 마치는대로 빨랑 전화주세요. 기다릴께요.

나: 어.... 응..... (내가 혹시 귀신에 홀렸나?) *철컥*

 

더 웃기는 일은, 마치 건축학개론 영화의 승민처럼,  

전화 받던 그때 나는 다른 여자와 결혼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전화왔던 그 시점에 양가 어머님들끼리의 상견례를 앞두고 있던 상황이었다.  

 

 

우리 다음달에 결혼식이야!

 

그래서 어떻게 됐느냐고?

그녀를 다시 만나기는 했지만, 그냥 내 처지를 잘 이야기해서 돌려 보냈다.

(왜 그녀가 느닷없이 그해 안에 나를 붙잡고 결혼하기로 맘 먹었는지는 끝내 듣지 못했다.)

그래 놓고는 추진하던 결혼도 도중에 말썽이 생겨서 나가리 되어 버렸다.  

결국 두 마리 토끼 다 놓쳐버린 셈이다. -,,-

그 혼담은 애초부터 문제가 많았기 때문에 도중에 깨져 버린 것이 별로 아깝지는 않지만,

내가 은연중에 '누군가 나를 원하는 여자는 또 있다'라고 잠재의식 속에 생각했던 것도 

혼담이 깨어진 한 가지 원인이 아닐까라는 생각은 지금도 들곤 한다.

 

마지막 에피소드를 생각해 보면, 영화 속의 판타지가 가끔은 정말로 현실이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내가 건축학개론을 보면서 저건 바로 내 이야기라고 착각했다 해서 욕할 사람 아마 없을 거다.

 

 

 

그렇기 때문에 이용주 감독이 어느 인터뷰에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어느 누구는 좀 뜨겁게 관통했을 수도 있는 그런 감성들...'을 이야기 했을 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래, 젊은 시절에 그런 감성들을 뜨겁게 관통했던 사람이 바로 여기 있다 라고.

나 뿐만 아니라 이 영화에 공감했던 사람들은 모두 

건축학개론 속에 바로 저건 내 이야기라고 생각되는 장면 몇 개쯤은 다 가지고 있을거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나는 이 영화에 단순히 공감(共感)했던 것이 아니다,

나는 건축학개론이라는 영화에 공명(共鳴)했던 거다 라고 말하고 싶다.

하나의 소리굽쇠가 진동하면 같은 고유 진동수를 갖는 주변의 다른 소리굽쇠도 저절로 진동하듯이,

건축학개론이라는 영화의 고유 진동수에 내 몸과 마음 전체가 같은 진동수로 함께 공명했던 거다.

 

그래서 건축학개론은 내 인생의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