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강하는 건축학개론

건축학개론 재수강 11주차: 남자가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이유

1andau 2012. 5. 31. 18:51

 

(주의사항: 이 글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대량 함유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께서는 절대로 읽지 마십시요.)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건축학개론의 메인 선전 카피다.

이 영화와 비슷한 주제를 다뤘던 미국 영화 '500일의 썸머'의 메인 카피인

'우리는 모두 썸머와 사귄 적이 있다'를 베낀 거라는 설도 있지만,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인상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을 보면 꽤나 잘 쓰여진 카피임에는 틀림없다.

'우리 (여자들) 모두는 누군가의 썅년이었다'는 패러디까지 나온걸 보면 더욱 그렇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저 카피가 말이 안 된다는 현실은 누구나 알게될 거다.

누군가는 여러 사람에게 첫사랑이었을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아무에게도 첫사랑이 아니었다는게 현실이다.

누구에게나 첫사랑이 있었다라면 몰라도, 모두가 누군가의 첫사랑이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 선전 문구는 뻥이었다 치고, 누구에게나 첫사랑이 있었다는 말은 맞는걸까?

그냥 속으로만 혼자 간직한 짝사랑이나

살짝 호감을 가졌다가 말았던 일화나

연애질할만한 나이가 되었을 때 우연히 만나 의무감(?)에 사귀었던 대상까지 

모두 첫사랑이라고 봐준다면 맞는 말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도 사랑은 사랑이니까.

 

첫사랑의 경험이 이 정도였던 사람들이 건축학개론을 보고 나서 흔히 하는 표현은

'첫사랑이 아련하게 생각나려고 했는데, 내 첫사랑이 누구였는지 잘 모르겠네'이다.

중학교 때 예뻐 보였던 교회 여자애?

고등학교 때 같은 버스에 타던 이웃 여고 여학생?

대학 신입생 시절 동경했던 예쁜 선배 누나?

이러고서는 건축학개론에 대해 평하면서 기껏 한다는 소리가

'잔잔하고 아기자기 했어요.' 라거나

'납득이가 없었으면 이 영화는 볼게 없었을 거에요'라거나

'이 영화는 첫사랑 영화가 아니고 90년대를 추억하는 복고영화에요' 아니면

'건축학개론이 회상하는 건 첫사랑 그녀가 아니고 그 시절의 나 자신인거 같아요.' 같은 소리들 뿐이다.

 

 

혜승이와 나는 무려 '결혼을 약속했던' 사이다. --;;;

 

놀구들 있네. -_-;;;

 

그런 식으로 말하면, 내 첫사랑은 초딩 입학 전에 맨날 소꿉놀이 같이 하던 혜승이 일거다.

이웃집에 살던 우리는 허구헌날 엄마 아빠 소꿉놀이 하면서 서로 너무 사랑한(?) 나머지

나중에 결혼한다고 사방팔방에 선포하고 양쪽 부모님께 허락까지(!!) 받았던 사이다.

혜승이와 헤어진 이유는 황당하게도

걔가 나보다 1살 많아서 국민학교(그때는 초등학교가 아니었다)를 먼저 들어갔기 때문이다.

남자애는 아직 골목에서 코흘리고 있는데 여자애는 학교 다니니까 저절로 멀어지더라.

나는 그때 경험 이후로 다시는 연상의 여자를 사귀지 않았다. --;;

 

 

그럼 재수생이 고삐리 사귀지 누구 사겨? 대딩들은 상대도 안 해주는데!

 

혜승이가 너무 어릴 때라서 인정할 수 없다면

아무거나 첫사랑이라고 갖다 붙이는 방식으로 해석했을 때

내 첫사랑은 초딩 6학년 때 한 반이었던 갑성이였을 거다 (여자애 이름이....별나긴 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엄마처럼 나를 챙겨주다가 애들에게 '얼레꼴레리'까지 들었던 것을 보면

우리 사이에 귀여운 뭔가가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지금 와서는 전혀 아무런 느낌이 없다.

 

 

나도 이런 초등(국민)학교 졸업사진 갖고 있다.

 

그런건 첫사랑이 아니고 그냥 에피소드다.

단순한 호감이나 동경을 첫사랑이었다고 주장하면 다음과 같은 이상한 해석도 함께 생겨난다.

서연의 첫사랑은 승민이 아니라 강남선배라는 주장이다. 따지고 보면 일리 있는 말이다.

동경이나 호감도 첫사랑이라면, 서연이 처음 동경하며 호감을 느낀 상대는 승민이 아니라 강남선배니까.

 

건축학개론을 보고서 자기 첫사랑이 누구였는지 한참 생각해야 하는 사람은

미안한 이야기지만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의미에서의 첫사랑이 없었던 거다.

홍역을 앓고 성장기를 지나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듯이

진정한 성장통으로서의 첫사랑은 경험한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는 거다.

인정할건 인정하자.

 

그러면 뭐가 첫사랑이란 말이냐고 묻는 사람 틀림없이 있을거다.

내가 좋아하는 첫사랑의 정의는 건축학개론에 대한 어느 인터넷 리뷰에서 본 것인데,

'난생 처음 서로 온맘다해 좋아했던' 사랑이다.

나의 첫사랑은 옆집 소꿉친구 혜승이?

서연의 첫사랑은 먼발치에서 동경했던 그 강남선배?

애들은 제발 좀 가라, 응? -_-;;;;

 

관객서비스 목적으로 치장된 납득이의 유머나 90년대 복고 분위기 소품들을 걷어버리고 나면

이 영화의 핵심은 누가 뭐라고 헛소리를 하건 '뼈저리게 아팠던 첫사랑'이다.

어떤 관객에게 첫사랑 이야기보다 관객서비스용 장식품이 더 마음에 들었다면

그건 아마 영화의 첫사랑 이야기가 직접 와 닿을만큼 절실했던 첫사랑 경험이 없기 때문일 거다. 

 

뼈아픈 첫사랑의 경험이 있다는 사실이 축복인지 저주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이렇게 영화 하나 때문에 두 달 동안이나 충격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면서

같은 영화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보는 일은 없었을 거라는 점이다.

충격적인 첫사랑을 경험 해보지 않은 사람들 눈에는 다 늙은 중년 아저씨가 도대체 왜 저러나 싶겠지.

 

 

힘 내 .... 새꺄.....

 

"승민이가 저렇게 납뜩이 품에 안겨서 손까지 바들바들 떨면서 울 때,

이불 속에서 한 쪽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짜져 있을 때...

그런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사람들은 모를 거다.

그 망할 놈의 첫사랑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큰 파괴력을 발휘하는지를."
내가 하는 말이 아니고 이 영화를 5번이나 봤다는 어느 블로거가 쓴 글이다.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어떤 분석하기 좋아하는 이는

'그깟 첫사랑 경험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라며 나를 비난하기도 했다.

대단하건 아니건 경험 안 해 본 사람은 모를 수 밖에 없는거다.

군대를 가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어떤 군대 이야기도 피상적일 수 밖에 없고

결혼을 해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어떤 결혼 이야기도 피상적일 수 밖에 없으며

아이를 키워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어떤 육아 이야기도 피상적일 수 밖에 없듯이

뼈저린 첫사랑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건축학개론이 그냥 밋밋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나.... 충격 먹었어....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한 묘사들 가운데 내가 제일 싫어하는 표현은

'아련한 첫사랑의..'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이다.

아련하기는 개뿔... 나에게 이 영화의 느낌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다. -_-;;;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만큼 첫사랑의 파급효과가 크고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거다.

 

첫사랑을 못 잊는 쪽은 남자라는 말이 있듯이,

대체로 여자들보다는 남자들에게 첫사랑의 충격이 더 크고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다.

물론 다 그런건 아니다.

내가 저 위에 인용했던 첫사랑에 대한 잘 쓰여진 감상문 두 개는 모두 여성 블로거들이 쓴 글이다.

 

왜 남자들은 첫사랑을 잊지 못할까?

 

내가 보고 들은 여러 의견들 가운데 가장 웃겼던 것은 이런 답변이었다.

"남자들이 첫사랑 망쳐먹고 군대 갔다 오면 짐승이 되거든?

첫사랑을 그리워 하는 이유는 자신이 인간이었던 마지막 시절을 그리워 하기 때문이야."

웃자고 하는 이야기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의외로 진실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역시 건축학개론을 보고 인터넷에 어느 남자가 쓴 감상문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첫사랑) 이후에 만난 여자들은 모두 내 욕망의 대상들이었다.
나는 외로움 때문에 만났고, 순간의 감정에 이끌려 만났고,
'정말 이게 사랑인가?'라고 의심할 정도로 괴로움 속에 만났다."

 

 

승민같은 쑥맥이 이렇게 변한다는 말이다.....

 

모든 남자들이 전부 저 블로거나 나처럼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내 경험에 비추어 봐도 첫사랑과 그 이후의 사랑은 성적인 면에서 확연히 구분된다.

나는 첫사랑 그녀에게서 어떤 성적인 자극을 받거나

그녀를 성적인 대상으로 생각해 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반면에 두번째 연애부터는 아주 자연스럽게 성적인 면이 사랑에 개입되기 시작했고

나이를 먹어가고 결혼적령기가 가까와 오면서는 세속적 조건까지도 끼어들기 시작했다.

순수했던 첫사랑 어쩌고 하는 이야기가 꼭 멋져 보이려고 하는 빈말인 것은 아니다.

 

 

 

첫사랑 말아먹고 사랑과 여자에 대해 절망하고 나면,

건축학개론의 승민처럼 좋게 말해서 순수했고 나쁘게 말해서 찌질했던 1학년 남자들은

강남선배 같은 제비가 되기도 하고,

김남길 같은 나쁜 남자가 되기도 하고,

최소한 여자를 만날 때 성적 매력을 염두에 두는 '남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몇 번이나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첫사랑이 섹시하면 이상한 이유가 바로 이거다.

 

 

아무리 수지 너라도 첫사랑이 이러면 정말 곤란해.....

 

물론, 곰곰히 따져보면 그게 첫사랑이 다른 사랑보다 별다른 점이 있기 때문은 아니다.

애초에 남자 눈에 콩깍지가 씌워져서 여자에게 홀딱 반하는 사건 자체가

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호르몬의 작용이므로 첫사랑에 성적인 면이 없다는 말은 어폐가 있다.

단지, 첫사랑에 빠진 남자들은 그걸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몸이 부웅 떠서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 천국에 있는 듯한 행복감에 젖을 뿐이지

그것조차 성호르몬의 충동에 의한 환상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거기에 더해서, 대개 첫사랑은 서투른 초보들의 삽질이기 때문에

남녀 사이가 성적인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일찌감치 끝장 나버리기 쉬워서

많은 경우 아주 건전(?)했던 상태로 막을 내리게 된다는 현실적인 사정도

첫사랑을 비현실적으로 이상적인 플라토닉 러브로 기억하게 만드는데 한몫하는 듯 하다.

 

첫사랑이 가장 오래, 가장 강렬하게 기억되는 또다른 이유도

삽질 때문에 대부분 이른 단계에서 끝장 나버린다는 특성과 관련이 있다.

 

건축학개론과 곧잘 비견되는 대만 영화인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람들이 그러지. 사랑은 알듯 말듯한 순간이 가장 아름답다고.

진짜 둘이 하나가 되고 나면 많은 느낌이 사라지고 없어진대."

다시 말해서 첫사랑이 최고로 찬란한 때는 소년과 소녀의 마음이 막 통하려는 초기 단계인 거다.

그 단계에서 첫사랑을 깨먹은 사람들은 그 다음 단계가 의외로 별볼일 없다(?)는 현실을 모르게 된다.

 

 

 

다음 글 역시 건축학개론에 대한 어느 인터넷 감상문에서 인용하는 것이다.

"막 봉우리를 터뜨리려 하는 목련을 보고 그 후를 경험하지 못한 자,

그 화사함에 중독되겠지..
사랑이 시작되려 하는 지점에서 멈춰서버린다면..

그 떨림에 중독될거야..

...(중략)...

첫사랑을 다시 만나고 싶은지의 설문에서

만나고 싶지 않다는 답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본능적으로 아는 거지..

그 떨림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잠시의 꽁깍지 그 순간의 환상을 간직하고 싶은 거지, 달콤하니깐..
(현실의) 사랑은 비루하다는 것을 아는거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글이 가장 핵심을 찌른 것 같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사랑은 시작하기보다 오래도록 잘 유지하기가 더 어렵고,

그걸 해내려면 어느 정도 경험과 운(인연)이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뼈아픈 첫사랑들이 처음 시작할 때는 아주 잠깐 무한행복을 누리다가

경험부족과 삽질 때문에 제대로 유지되지 못하고 이른 단계에서 깨어져 버리는 거다.

윗 글이 지적한대로, 가장 행복한 때는 사실 사랑이 막 피어나는 순간 그 때뿐이고

그 사랑이 안정적이 되어 버리면 지지고 볶는 현실과 부딪혀서 덜 행복해지기 쉬운데,

첫사랑은 가장 행복했던 초기 단계에서 곧잘 깨어져 버리기 때문에

그때 첫사랑이 잘 풀렸더라면 얼마나 더 행복했을까 하는 환상을 심어주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꽃망울이 맺혀서 터지기 직전에 갑자기 시들어버린 목련과 같은 첫사랑'의 환상이

한 번 머리에 각인되면 그때는 어떤 현실의 사랑도 첫사랑과는 비교가 될 수 없어진다.

정작 그 첫사랑도 오래도록 잘 되어갔다면

연애란 것이 마냥 그렇게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현실을 깨달았을텐데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SF소설인 지구제국(Emperial Earth)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아마도 마약을 SF소설로 비유한 것 같은데,

미래에는 enjoy machine 이라는 기계가 존재해서 사람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적절한 처방에 따라 의사가 사용하면 심리치료에 유용한 기계지만

흥분을 즐기기 위해 멋대로 사용하다가 출력이 지나쳐 버리면 뇌에 화상을 입게 되어

그 순간의 감정이 영영 뇌에 각인되고 평생 그 황홀한 느낌만을 끝없이 추구하게 된다.

어느 소녀를 사랑하며 인조이 머신을 사용했다가

평생 그 소녀에 대한 강렬한 사랑이 머리에 각인되어 버린 남자주인공이 소설에 등장한다.

 

남자가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가장 찬란했던 순간에 정지된 채로 뇌에 각인되어 버린,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환상

이기 때문이다.

 

앞서 인용했던 어떤 글에서 '첫사랑이 파괴적'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내 생각에 첫사랑이 파괴적인 이유는,

단순히 실연해서 며칠씩 울거나 밥을 못 먹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고,

이렇게 활짝 개화하기 직전의 꽃과 같은 첫사랑의 아름다움에 대한 환상이 머리 속에 각인되어 버리면

그 이후의 사랑에서도 계속 그런 지고의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면서

현실적인 사랑에 만족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가장 파괴적인 영향인 것 같다.

 

 

눈 앞의 현실인 지금의 사랑은 언제나 불만스러워진다.

 

아무리 예쁜 여자가 내 상대가 되어도 첫사랑 그녀처럼 숭고한 아름다움은 없는 것 같고

애인이 섹시하면 당연히 행복해야 하는데 청초하고 순결했던 그녀에 비하면 천박해 보인다.

서로 잘 맞아 안정적인 연애가 행복하게 지속되고 있는데도

첫사랑 때 중독된 그 가슴 울렁대는 최고의 행복한 기분에 비하면 시시하게 느껴진다.

정작 첫사랑도 잘 됐으면 시시한 일상이 기다리고 있기는 마찬가지였을텐데 말이다.

결국 '첫사랑 때 중독된 그 느낌'을 찾아 헤매면서 결코 충족될 수 없는 갈망을 채우려 하기 때문에 

그 이후에 찾아오는 모든 사랑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건축학개론에서 승민과 서연의 평범한 첫사랑이 그토록 강렬한 인상을 주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많은 감상문들이 관람 후 뭔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먹먹한 심정을 느꼈다고 말하고 있다.

그 설명하기 어려운 먹먹함의 원인은 바로 이런 꽃피기 직전에 시들어 버린 목련에 대한 아쉬움일 거다.

전지적 시점의 관객들은 모두 다 이렇게 생각한다.

승민이 그때 오해하지 않고 고백만 했다면,

승민과 서연의 앞에는 다가올 화창한 봄날 같은 아름다운 나날들이 기다리고 있었을 거라고.

 

 

화창한 봄날이 오면 그들의 첫사랑처럼 피어나기를 기대하며 서연이 심었던 빈 집의 꽃씨들.

 

서연과 첫 눈 오는 날 약속을 잡고 방안에서 춤추던 승민의 모습이 바로 그런 절정을 상징한다.

그리고는, 꽃망울을 터뜨리기 직전에 시들어버린 목련처럼,

화려하게 피어나기 직전의 사랑이 어느 순간 갑자기 허무하게 무너져 버렸기 때문에,

영화를 본 관객들을 더욱 안타깝게 만들면서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뇌 속에 각인되어 있던 그 환상을 다시 불러내어 증폭시키는 것이다.

 

 

이 때가 사실은 제일 행복한 때.....

 

건축학개론을 보고 유사한 경험을 갖고 있던 관객들이 받는 충격은

결코 단순히 아련한 추억이나 지난 날에 대한 감상 때문이 아니다.

활짝 피어나기 직전에 깨져버린 첫사랑이 뇌에 심어준 그 환상이,

첫사랑 이후로 나의 연애들에 그토록 파괴적인 영향을 미쳤던 그 이룰 수 없는 갈망이,

영화 속 승민과 서연의 첫사랑이 깨어지는 장면을 보면서 충격적으로 되살아 나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고 철이 들면서 어느 정도는 환상을 깨고 헤어나왔다고 생각했건만!

마치 힘들게 중독을 끊고 갱생한 마약쟁이가 다시 마약을 들이켰을 때와 마찬가지 아닐까?

 

이런 느낌은 활짝 피어나기 직전에 시들어 버린 첫사랑의 경험없이는 아마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거다.

그런 의미에서 뼈아픈 첫사랑의 기억은 축복보다는 저주인 것 같고,

건축학개론은 잔잔하고 예쁜 영화가 아니라

앞서 이야기한대로 무섭고 나쁜 영화일 수도 있는 거다.

 

소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에서 남주인공 임형빈이 했던 이야기는

어떻게 남자가 영영 뇌 속에 각인되어 버린 화사한 첫사랑의 환상을 잊지 못하는지 잘 말해주고 있다.

"참다운 사랑은 일생에 한번밖에 앓지 않는 홍역과 같은 것이라고 했던 라프카디오 헌의 말은

적어도 내게는 바로 맞아떨어진 셈이었습니다.

그때 이후 나는 세상의 어떤 여자에게서도 그녀에게서와 같은 감정을 느껴 보지 못했으니까요."

당연히 첫사랑 그녀(에 대한 환상)처럼 중독되는 느낌을 주는 여자는 현실에서 다시 만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남자가 첫사랑을 못 잊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