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강하는 건축학개론

건축학개론 재수강 15주차: 당신들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판타지라 우기지 마라.

1andau 2012. 6. 13. 02:49

(주의사항: 이 글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대량 함유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께서는 절대로 읽지 마십시요.)

 

건축학개론의 과거 부분은 일화들이 잔잔해서 얼핏 보면 아주 평범한 영화처럼 보이기 쉽다.

일전에 언급했던 동양화처럼 여백이 많은 영화라는 특징과 일맥상통 하는데,

다른 사랑영화들에 비해 극적인 장면이 많지 않고

현실적이며 흔한 에피소드 여러개를 담백하게 연결해 놓았을 뿐이다.

 

그 나머지 여백은 관객이 자신의 경험과 상상으로 채워야 하기 때문에

'건축학개론은 관객 본인이 살아온 인생에 따라 평이 달라지는 영화'라는 재미있는 리뷰도 있다.

각자의 살아온 인생의 경험에 따라 천차만별의 영화감상평이 등장하게 된다는 거다.

활짝 피어나기 직전에 무너져 버린 첫사랑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호러영화에 버금가는 충격을 받을 거고,

그런 경험이 없다면 그저 납득이의 유머가 빛나는 90년대 복고영화 정도로만 비칠 수도 있다.

 

 

 

영화에서는 스토리의 뼈대만 보여주고 비어있는 여백을 관객들이 상상하도록 만드는 이런 방식은

영화를 볼 때마다 느낌이 달라지는 신기한 효과를 만들어 낸다. 

보면 볼수록 비어있던 여백이 채워지면서 새로운 감동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도대체 영화가 얼마나 좋았길래 10번이나 반복해서 봤느냐고 나에게 묻기도 하는데,

영화가 좋았기 때문에 반복해서 봤다기 보다 볼 때마다 느낌이 달랐기 때문에 반복해서 관람했던 것이다.

 

이 영화를 여러번 관람했다는 어느 블로거는 볼 때마다 눈물나는 장면이 달랐다고 하는데

나도 똑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적극 공감한다.

 

 

 

두번째 볼 때는 첫 눈 오는 날 빈 집 장면에서 눈물이 나더니,

 

 

이 사람은... 누구냐.....?   그냥..... 친구......

 

세번째 볼 때는 핸드폰 속의 승민 사진을 보고 누구냐고 아버지가 물었을 때 

서연이 울먹이며 '그냥 친구'라고 답하는 장면에서 눈물이 났고,

 

 

 

네번째 볼 때는 서연이 소포를 개봉하고 CD를 꺼내는 장면에서 눈물이 나는 식으로 말이다.

 

결국 이 영화에 열광했던 사람들은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자신의 경험이 뭔가 공유하는 점이 있었기 때문에

그토록 건축학개론에 공명(공감)했던 것이며,

이 영화를 반복해서 보고 또 봤던 사람들은 

영화의 비어있는 여백에 자신의 지나온 인생을 투영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몇 번이나 반복해서 관람하게 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본 관객수가 400만이 넘어서 한국멜로영화로는 사상 최대기록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 진정으로 이 영화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 100만명은 너무 잔잔하고 밋밋한 이야기에 돈이 아깝다고 생각했을거고

다른 100만명은 납득이의 유머와 90년대 소품의 깨알같은 재미로만 만족했을거고

또다른 100만명은 영화가 이해되지 않는데 다른 사람들이 열광하니까 불만스러워 했을거고

나처럼 '뼈아프게' 영화를 보고 때로는 반복관람까지 했던 사람들은 100만명도 채 안 되는 것 같다.

 

이 영화의 단점은 여백을 상상해야 하는 독특한 스토리 구조 때문에

그 여백을 조금만 잘못 채우면 영화 전체가 오해받기 쉽다는 사실이다. 

내 짐작에 건축학개론을 오해하고 있는 관객이 2백만명은 족히 되는 것 같다.

여러 인터넷 리뷰들을 읽다 보면 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아 보인다.

 

물론 영화건 소설이건 어떤 컨텐츠가 주어지면 그걸 해석하는 것은 관객이나 독자의 몫이다.

컨텐츠를 이해하는데 있어 어떤 정답이란 존재할 수 없다.

설령 원작자가 어떤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컨텐츠를 제작했다 하더라도,

관객이나 독자가 그와 다르게 해석한다고 해서 그걸 '틀렸다'라고 말할 수는 없음을 나도 잘 안다.

건축학개론을 단순히 90년대 복고 영화로 해석하건 말건 그건 그 사람의 자유다.

 

진짜 문제는, 어떤 사람들은 건축학개론의 스토리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하면서

이 영화의 상업적인 성공과 높은 호응이 자신들에게는 납득이 되지 않으니까 

그 결과를 무조건 남성 판타지나 싸구려 멜로 감성의 충족으로만 해석한다는 사실이다.

 

건축학개론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음과 같은 잘못된 이해에서 해석을 시작한다.

 

- 멜로 영화에서 사랑은 모든 것을 이겨내야 한다.

- 승민은 서연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 강남선배는 상습적으로 술 마셔서 정신 잃은 여자를 겁탈하는 성범죄자다.

- 종강날 밤, 승민은 남자라면 당연히 나서서 선배를 제지하고 서연을 구해내야 하는것 아닌가?'

- 승민이 서연과 이별한 것은 서연의 순결문제 때문이었다.

- 승민이 서연에게 잔인하게 이별을 고하는 행동은 이해할 수 없는 옹졸함 때문이다.

 

이렇게 잘못된 스토리 이해에서 출발하여 뭔가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해석을 만들어 내려다 보면

결론은 안드로메다 은하 어디쯤으로 날아가 버리게 된다.

 

- 승민은 용기없고, 비겁하고, 찌질하고, 개새끼고, 한심하고, 못났고, 겁많고, 열등감에 쌓여 있고......
- 이거보고 남자들이 공감하는 이유는 남자놈들이 원래 용기없고, 비겁하고, 찌질하고.... 때문이다.

- 상대가 선배였기 때문에 쫄아서 제지하지 못한 거다. 남자들은 원래 서열에 꼼짝 못한다.

- 싸구려 첫사랑 팔아먹기로 포장된 판타지다. 별거 아니다.

- 아마 남자들은 1학년 때 선배에게 좋아하던 여자 뺐겼던 경우가 많았나 봐?

- 내 사랑을 받아주지 않았던 첫사랑 그녀가 속으로는 나를 좋아해 줬다는 위안을 받는 남자용 영화.

- 남성 판타지를 충족시켜서 히트한 거다. 돌아온 30대 중반 첫사랑이 한가인처럼 이쁘기를 바라는 환상.

- 첫사랑이 15년 동안이나 자기를 잊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남자들의 도둑놈 심뽀를 채워주는 판타지.

- 중세 장원의 영주가 아내의 초야권을 행사해도 꼼짝 못했던 농노들 이야기의 현재판이다.

- 강남 강북의 계층/계급 갈등이 영화의 주제다. 민중이여 일어나라! (응? 이건 도대체 뭐지? -_-?)

- 강남 오렌지에게 여자 뺐기지 말고 다 함께 투쟁해서 불평등 없는 세상을 만들자! (얼씨구....-0-)

 

등등등.....

 

건축학개론을 보고 공감했던 사람들은 이런 해괴한 해석들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 한다.
아니 세상에 어떻게 똑같은 영화를 보고서 이렇게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할까?

저런 어거지 해석들은

영화의 여백을 잘못 채웠기 때문에 생겨난 오해

로부터 나온 것들이다.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어떤 점들을 생각해야할 필요가 있는지는

강의 내내 장황하게 설명했으니까 여기서 반복하지는 않겠다.

 

우리말에서 '이해를 못 한다'라고 이야기 하면

마치 '머리가 나쁘다'는 뉘앙스를 가진 것처럼 들리기 때문에 

'당신은 건축학개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을 들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뭔가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수학을 이해하느냐 못하느냐는 분명히 두뇌의 우수성과 연관이 있지만,

어떤 영화를 이해하느냐 못하느냐는 머리의 좋고 나쁨과 아무 관련이 없다.

나는 '8월의 크리스마스'나 '번지점프를 하다'를 지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 영화를 이해하는 사람들보다 열등하거나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지 내가 살아온 인생 경험과 취향이 저 영화들을 이해하는 사람들과 다를 뿐이다.

 

 

 

이용주 감독도 어느 인터뷰에서,

영화는 우열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취향의 문제일 뿐이며

감독 자신과 취향이 다른 관객은 언제나 존재하므로 

'내 영화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항상 있다'라는 요지로 쿨하게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감독의 말대로 어떤 사람이 건축학개론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그건 경험과 취향의 차이일 뿐이며,

누구는 영화에 대해서 똑똑하고 누구는 바보같기 때문이 아니다.

 

 

납득이 안 되네 납득이...?

 

경험과 취향에 따라 영화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납득하지 못하고,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영화가 대박을 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문제다.

이런 사람들 논리의 종착역은 대부분 이렇다. 

'건축학개론은 싸구려 감성을 자극하는 남성 판타지라서 성공'한 것이고,

자신들이 영화에 공감하지 못한 이유는 

싸구려 첫사랑 팔이나 남성판타지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

고급스러운 정신과 정치적 공정성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안하지만 당신들이 이 영화를 이해하지 못한 이유는 그저당신들의 인생에 건축학개론과 공명할만한 사랑의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거나영화에 대한 취향이 달랐기 때문일 뿐이다.   당신들이 건축학개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판타지라고 우기지 좀 마라. 제발.

 

건축학개론은 판타지가 아니라 오히려 상당히 리얼한 영화다.

 

 

클래식은 포스터만 딱 봐도 판타지 그 자체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의 (첫)사랑 영화 가운데 최고의 판타지는 '

클래식

'이라고 생각한다.

60년대 그 시절에 착실한 고딩들이 우연히 눈 맞아 연애하게 된다는 도입부 부터가 비현실적인데다가,

뻔한 집안환경의 차이나 정혼자의 존재,

월남전에 참전해 실명하는 불행을 맞는 남자 주인공,

운명을 뛰어넘어 아들딸 대에 맺어지는 사랑의 결실까지,

이 영화는 아주 정통적이고 '교과서적인' 판타지 사랑영화다.

설탕을 듬뿍 발라 더 이상 달달할 수 없는 당의정과 같은.

아예 제목도 클래식이라고 붙여놓고는 작정하고서 고전적인 사랑영화들의 모든 클리셰를 총동원한다.

(클래식을 폄하하려고 하는 말이 절대 아니다. 멜로영화가 꼭 리얼해야할 당위성이 어디에 있는가?

나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4번이나 본 열혈팬이다.) 

 

 

봄날은 간다는 너무 리얼해서 오히려 끔찍할 정도다.

 

클래식의 반대편 극한에 서 있는 영화가 '봄날은 간다'이다.

나는 이 영화보다 더 현실적으로 사랑을 묘사한 영화를 본 적이 없다.

봄날은 간다의 최대 장점은

연인들이 깨어지는 이유가 '사랑이 식어버렸기 때문'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직설적으로 잔인하게 드러냈다는 것이다.

현실의 사랑이 깨어지는 이유의 99%는 사랑이 식었기 때문인데,

반대로 애정영화의 99%는 사랑으로 모든 난관을 극복하는 비현실적인 판타지를 보여준다.

그런 사랑영화의 불문율을 부숴버리고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라는 명대사와 함께

현실의 사랑은 '애정이 식어서' 깨어진다는 것을 봄날은 간다는 극도로 리얼하게 드러내 준다.

이 영화의 단점은 이렇게 극도로 리얼하게 사랑을 묘사했기 때문에 재미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봄날은 간다는 너무 현실적이어서 뜨금하기는 했어도

몇번이고 반복해서 보고 싶을만큼 아주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었다.

 

 


'건축학개론'은 '클래식'과 '봄날은 간다'의 장점만 취해서 딱 중간 정도에 있다.

어설프게 중간 정도라는 의미가 아니고,

하나하나의 장면들은 봄날은 간다에 맞먹을만큼 사실적이고 리얼한데그 장면들을 재료로 해서 조립된 첫사랑 스토리는 클래식이 울고갈만큼 드라마틱해서

양 극단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중간이라는 뜻이다.

각각의 장면들은 마치 내가 스무살 첫사랑 할 때처럼 리얼하면서

서연과 승민이 이별하는 과정은 눈물이 펑펑 쏟아질만큼 드라마틱하다.

 

그렇기 때문에 건축학개론은 판타지가 아니다.

'라라윈'이라고 인터넷에서 연애상담으로 유명한 어느 블로거는

이 영화를 '너무 사실적이어서 불편하기까지 하다'라고 평하고 있다.
나도 건축학개론은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 제목처럼 '불편한 진실'이 드러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첫사랑이 깨어지는 이유는 대부분 오해와 고집과 몰이해 때문이라는 뼈아픈 진실.

 

과거에 유명했던 (첫)사랑 영화들을 생각해 보면,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은 대부분 불가항력적인 이유들 때문

이었다.

가장 흔해 빠진 것은 남녀간의 신분 차이나 집안 환경 차이이고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불치병이나 교통사고 같은 운명적인 원인도 많았으며
조금 스케일이 커지면 전쟁이나 거대한 역사적인 격변이 원인이기도 했다.

 

그에 반해 건축학개론의 과거 부분에서는,

사랑하고 있음에도 서투르고 경험이 없어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첫사랑이 쉽게 깨어져 버리곤 한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정이 이별의 이유로 제시되어 있다.

이렇게 첫사랑이 이별하는 과정을 불편할만큼 현실적으로 묘사한 영화를 

스토리의 일부분에 영화적인 장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판타지라 매도하는 것은 분명히 옳지 않다.

 

건축학개론은 판타지를 만족시켰기 때문에 상업적으로 성공한 것이 아니고,

보편적인 첫사랑의 일화들을 재료로 삼았으면서도그 일화들을 부품으로 삼아 조립해낸 이야기는 극적이고 드라마틱

하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해냈기 때문에 이처럼 성공한 거다.

(그에 반해서 엄태웅과 한가인이 등장하는 현재 부분은 상대적으로 리얼하지 못하고 보편성이 떨어진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건축학개론의 스토리 구조를 불만족스러워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이용주 감독은 스토리 텔러로서의 역량이 상당한 것 같다.

전작인 '불신지옥'도 영화를 볼 때보다 보고 난 후에 더 느낌이 강렬해지는 영화라고 하던데,

스토리를 치밀하게 구성하면서 두고두고 여운이 남는 이야기를 조립해낸다는 점에서

만화가 강풀과 닮은 점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건축영화에 벽돌쌓기가 빠지면 섭하쥐.

 

건축학개론 스토리에 대한 수많은 오해들을 생각해 보면,

시나리오가 10년 동안이나 영화화되지 못했던 이유도 이해가 간다.

이용주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 시나리오에 대한 비판 가운데 이런 것들이 있었다고 한다.

 

- 벽돌을 한 장씩 쌓아올리듯 감정선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서

   한군데라도 무너지면 전체가 붕괴되어 버리는 구조다.

 

- 관객을 설득하는 것이 안 되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는 이야기다.

 

영화에 대해서 이렇게 오해가 많은 것을 보면 충분히 일리가 있는 우려라고 생각된다.

한군데만 여백을 잘못 채워도 전체 스토리가 오해받게 된다. 

이렇게 오해의 소지가 많은 시나리오를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관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수십억의 투자를 감행할만큼 간 큰 제작자나 투자자 찾기가 정말 쉽지 않았을 거다.

그런 의미에서 시나리오를 알아보고 영화 제작을 실행한

명필름의 심재명 사장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든다.

 

특히 나는 이 영화에서 승민과 강남선배 사이의 갈등을

무턱대고 사회 구조나 계층간의 대립으로만 해석하는 일부의 주장이 정말 마음에 안 든다.

예를 들면, 서연이 선배를 동경하는 이유는 강남 부자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키 크고 잘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다라는 점은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다.

키 큰 남자나 잘 생긴 남자에게 여자들이 반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간주되면서

돈많은 강남 남자에게 반하는 것은 수많은 분석의 대상이 되는 것을 보면

건축학개론을 오해하는 해석들이 얼마나 편향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잘 생겼지, 키 크지, 집도 부자지...

 

'이수일과 심순애'에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해서

이수일과 심순애의 주제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아니지 않은가?

이수일과 심순애가 그저 사랑 이야기이듯이, 건축학개론도 그냥 첫사랑 이야기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영화에 대하여 나름 타당한 면이 있다고 생각되는 관점 하나를 언급하고자 한다.

나는 건축학개론에 대한 여러 감상문들을 읽으면서,

첫사랑에 대한 (일부) 여성들의 반감

이 이렇게 심하다는 것을 알고 정말 깜짝 놀랐다. *_*

 

 

 

승민의 약혼녀인 '은채'에게 감정이입해서 영화를 봤다는 결혼적령기 여성들이 꽤 많은데,

하나같이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엄태웅'과 '돌아온 첫사랑 한가인'에 대한 반감이 대단했다.

정말로 남자는 첫사랑이고 여자는 현재의 마지막 사랑인 것인지,

지금 사랑하는 남자의 마음 한구석에 첫사랑 그녀가 자리잡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그리고 내 남자에게 영화처럼 첫사랑이 찾아왔을 때 엄태웅같이 흔들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여자들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나 보다.

 

물론 건축학개론이라고 해서 판타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일전에 이야기 했듯이, 어느 날 느닷없이 찾아오는 첫사랑 한가인이나

첫사랑을 위해 집을 지어 행복을 선사하는 공대 남자 엄태웅이 등장하는

현재 부분에는 확실히 남성판타지적인 요소가 있다.

그렇지만 이 영화가 (여자들을 포함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울게 만든 이유는 판타지였기 때문이 아니라 첫사랑에 대한 리얼한 진실을 보여줬기 때문이다.첫사랑이 오해와 경험부족 때문에 활짝 피어나려는 순간 깨어져 버렸다는 아픈 현실말이다.

 

당신들이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무턱대고 판타지라고 우기지 말았으면 좋겠다.

건축학개론에 공명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이 영화야 말로 첫사랑에 대한 리얼리티 그 자체다.

 

 

이 건축학개론 재수강은 16주차의 기말고사만 남겨둔 채로 이번 강의에서 종강이다.

영화에서 승민과 서연이 이별하는 문제의 그 사건이 일어난 날이 종강날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기분이 참 묘하다. ^_^;;;

건축학개론 영화를 규정짓는 여러 정의들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인용하며 끝 맺고자 한다.

 

"영화 <건축학개론>은,

빛나는 시절 누군가를 사랑했으나
결국 뜻대로 되지 않았던
모든 이들의 청춘에 바치는 송가다."  

 

 

나 또한 이 강좌 내내 건축학개론을 분해하고 분석하고 해석해 왔지만,

하고 싶던 말들을 대부분 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온갖 엉터리 리뷰들만큼이나 내가 했던 일이 부질없는 짓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영화가 판타지로 오해 받으면 어떻단 말인가.

생각나는 그 사람이 꼭 첫사랑이 아니면 또 어떻단 말인가.

 

영화를 보면서, 내 인생의 가장 빛나던 순간에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건축학개론은 가치있는 영화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