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강하는 건축학개론

건축학개론 재수강 12주차: 건축학개론의 현재 부분

1andau 2012. 6. 5. 17:00

 

(주의사항: 이 글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대량 함유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께서는 절대로 읽지 마십시요.)

 

어느 시대에나 첫사랑에 대한 영화나 소설은 항상 있어 왔다.

나는 박사과정까지 공부하느라 대학을 무려 11년이나 다녔는데

그 기간동안 제법 유명했던 첫사랑 이야기들을 꼽아보자면

앞서 언급했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물론이고

'기쁜 우리 젊은 날', '첫사랑' 등등 꽤 여러 편이 기억난다.

 

 

기쁜 우리 젊은 날 (1987)

건축학개론의 제작자인 심재명 대표께서 이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신다고 한다.

 

 

첫사랑 (1993)

 

2000년대 초반이 되면 아직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최고의 첫사랑 영화로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클래식'과 '번지점프를 하다'가 나온다.

 

 

번지점프를 하다 (2000) 

 

첫사랑은 아니고 그냥 사랑에 대한 영화들이지만,

2000년을 전후로 해서 '미술관 옆 동물원',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같은 명작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것을 보면 그 무렵이 한국 사랑영화에는 최전성기가 아니었나 싶다.

영화화가 늦어져서 2012년에야 개봉됐지만

건축학개론도 처음 시나리오가 쓰여진 것은 2003년이니 결국 그 시대의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어느 블로거가 재미있게 표현한대로 '애들은 봐도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는, 어른을 위한 사랑영화들'이다.

(제발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나 '엽기적인 그녀'는 빼자. 그건 코미디 영화다.)

 

이 유명한 첫사랑 영화들의 스토리 구조를 들여다 보면 한 가지 재미있는 특징이 있다.

한 작품만 빼고 전부 다 첫사랑 이후의 '현재'가 영화에 나온다는 사실이다.

남주인공이 머나먼 미국에서 첫사랑 여주인공을 우연히 다시 만나거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이혼한 여주인공과 다시 만난 남주인공이 결국 그녀와 결혼하게 되거나 (기쁜 우리 젊은 날),

남녀주인공의 아들과 딸이 다음 세대에서 결국은 운명적으로 다시 맺어진다거나 (클래식),

죽은 여주인공이 다시 환생해서 다시 남주인공과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지기까지 한다 (번지점프를 하다).

일본영화 '러브레터'의 그 완벽한 현재와 과거의 연관은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거다.

왜 이렇게 첫사랑 영화에는 현재와의 대비가 많은 걸까?

 

내 생각하는 첫번째 이유는, 첫사랑 자체 이야기만으로는

보통 2시간 정도 되는 일반 영화의 스토리를 밀도있게 채우기가 어렵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첫사랑의 진행과정과 에피소드들이란 것이 워낙 뻔하고 유치찬란하기 쉽기 때문에

손발이 오글거리는 장면들로만 화면을 채워서는 관객이 재미있어 하지 않는 것이다.

엄밀하게 첫사랑 영화는 아니지만 첫사랑을 중요한 소재로 다뤘던 일본영화 '4월 이야기'가

보는 관객 입장에서는 정말 느닷없이 1시간만에 끝나버리는 이유도 이와 관련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뻔한 첫사랑 이야기만 가지고는 일반적인 영화상영시간인 2시간을 채우기가 정말 어려운 거다.  

앞서 언급했던 첫사랑 영화들 중에서,

유일하게 '현재'가 대비되지 않고 '과거'만으로 이루어진 영화는 이명세 감독의 '첫사랑'인데

꼭 그 탓만은 아니겠지만 이 영화는 나에게 그다지 재미가 없었고 흥행성적도 별로 좋지 못했다.

 

그 다음으로, 첫사랑 영화에 현재와의 대비가 꼭 들어가는 두 번째 이유는, 

첫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때가

첫사랑 하던 그 당시가 아니라 인생을 경험하고난 '현재'이기 때문인 것 같다.

현재라는 거울에 비춰봄으로써만이 첫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는 뜻이다.

 

 

 

한창 첫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스무살 그 때에

그 첫사랑이 인생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깨닫고 있던 사람이 과연 몇명이나 될까?

(그걸 알았으면 그렇게 말아먹지는 않았겠지!)

삶이라는 긴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스무살 그 때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거다.

그래서 첫사랑 영화는 거의 항상 과거의 첫사랑과 '현재'를 대비시켜

첫사랑 그 자체의 의미를 드러내는 스토리 구조를 갖는 것이다.

첫사랑 영화의 '현재'는 과거의 첫사랑을 비추는 거울이다.

 

건축학개론을 다운 받아서 과거 부분만 떼어내어 연결시켜 감상해 보라.

그냥 가벼운 청춘영화처럼 보인다.

이용주 감독의 인터뷰를 보면, 시나리오를 들고 제작자와 투자자를 찾아다니던 시절에

현재 부분은 재미없으니 과거 부분으로만 영화를 만들어 찍자는 제안을 여러번 받았다고 한다.

감독은 그렇게 되면 영화가 단순한 청춘물에 불과해지며

자신의 주된 의도인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거절했다고 하면서

과거와 현재가 대비되는 구조는 아무리 시나리오를 고쳐썼어도 바뀐 적이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용주 감독의 그런 선택은 탁월했다고 나도 생각한다.

이 영화가 지금과 같은 느낌을 관객들에게 주려면 반드시 현재가 대비되어야 한다.

 

 

 

일본 요리 만화에 보면 재미있는 조리법 이야기가 있다.

단맛 나는 음식을 만들 때 단맛을 더 강하게 하고 싶으면

설탕을 더 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소금을 약간 집어넣는다는 것이다.

소금의 짠맛이 상대적으로 설탕의 단맛을 더 증폭되도록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건축학개론에서 과거 부분의 첫사랑이 그토록 예뻐 보이는 이유도

현재 부분에서 승민과 서연의 현실이 좃같기(이거 영화대사인거 다들 아시죠?) 때문이다.

지랄맞은 현재와 대비되지 않으면

과거의 첫사랑은 너무 흔해빠져 진부한 연애담으로 끝나버리기 쉬운 거다.

 

예쁜 과거의 첫사랑 이야기만 해도 좋았을텐데

왜 구질구질하게 승민과 서연이 재회하는 설정을 했느냐는 불만을 토로한 감상문을 여럿 봤는데,

아마 이 사람들은 구질구질한 현재가 없었다면

과거 그들의 첫사랑이 그토록 찬란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거라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 영화가 제대로 맛을 내려면 씁쓸하고 구질구질한 현재 부분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건축학개론의 현재 부분에서 관객들의 의견이 갈리는 토론거리들 가운데 하나는

15년만의 첫 재회에서 정말 승민이 서연을 못 알아 봤느냐 하는 것이다.

나는 이 장면에서 승민이 서연을 알아봤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근거는 이용주 감독의 발언이다. "CD를 15년이나 간직한 승민이 설마 못 알아봤겠느냐."

각색 전의 원전 시나리오에도 '승민의 얼굴이 굳어진다'는 동작묘사가 있다.

어떻게 15년 정도 세월로 첫사랑의 얼굴을 잊을 수 있단 말인가?

단지 옛날에 나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심심풀이 땅콩, 숙제 도우미, 머슴 돌쇠로 홀려 먹었던

그 미운 '썅년'이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나니까 모른 척 하고 싶었던 것일뿐이리라.

 

 

나 이혼했다.... 나 썅년이지?

 

영화의 과거 첫사랑 부분은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 봤을만한 현실적인 장면들이 대부분인데 반해서,

첫사랑이 느닷없이 찾아와 집 설계를 의뢰한다는 현재 부분은

30~40대 중년 남자들이 쉽게 경험할만한 사건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다지 리얼한 스토리는 아니다.

 

특히 많은 여성 관객들이 어이없어 하는 부분은

이혼녀가 되어 버린 서연이 대책없이 무작정 승민을 찾아간다는 설정인 듯 하다.

건축학개론에 호의적인 평을 써놓은 여자들 까지도

그 부분만큼은 이해가 안된다고 여기저기서 불평하는 것을 보면

승민을 찾아간 서연의 행동은 확실히 여자들의 보편적인 감정에 걸맞는 설정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여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여자는 절대로 초라할 때 사랑했던 남자를 찾아가지 않는다는 거다.

오히려 가장 화려할 때 (자랑하러) 찾아가면 찾아가지.

여자들이 외출할 때 치장하는데만 2시간이 걸리는 것을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인것 같다.

 

감독도 그걸 아는지, '어느 날 느닷없이 찾아오는 첫사랑은 남성판타지가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단번에 판타지 맞다고 주저없이 답한 바 있다.

그 부분만큼은 확실하게 중년 남자의 판타지라고 인정하면서

그 대신에 나머지 부분은 오버하지 않고 최대한 현실적으로 구성하려고 애썼다고 말하고 있다.

 

 

내가 쪽팔려서 그래!

 

이 영화의 현재 부분 설정에 대해 많은 여자들이 오해하는 것이,
한가인은 이혼하고 직업도 없는 비참한 상태인데 반해
엄태웅은 (여자들이 보기에) 잘 나가는 것처럼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마치 '나를 버리고 가버린 썅년, 꼴 좋다'라는 식의 남성 복수극이라고 해석한다는 것이다.

남자들 입장에서는 약간 어이가 없는 사고방식이다.

적어도 나는 그 장면에서 '썅년에 대한 복수의 쾌감'을 느끼지 않았다. 전혀.

 

여자들에게는 황당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결혼과 가정에 얽매여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30~40대 남자들에게
아이도 없고 뜯어낸 위자료는 수억에 달하는 프리하고 아름다운 돌싱 한가인은
생각하기에 따라서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설정이다.

 

 

팔자 좋으신(?) 강남 돌싱녀 한가인

 

 

객관적으로 엄밀히 따져 보면 현재의 승민이 서연보다 조금 낫기는 하다.

그러나, 이 영화를 봤던 남자들 가운데 

첫사랑을 다시 만나도 자랑스러울만큼 엄태웅이 잘 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별로 없을 거다.

 

 

나도 퇴근이란걸 좀 합시다!

 

야근을 밥먹듯 하는 고단한 직장 생활,

 

 

나 같은 딱가리가 책임지고 일을 맡다니 그게 말이 안되거든?

 

소장 밑에 부장 밑에 딱가리라고 비하되는 말단 직위,

 

 

"아직도 정릉.. 그 동네에 계속 사는거야?"  "그.... 렇지... 뭐...."


여전히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월급쟁이의 삶,

 

 

그래서 우리 아빠가 도와준다잖아!      


그걸 이해 못하고 바가지 긁는 약혼녀,

 

 

엄마, 나 미국 가지 말까?


외로운 노모를 홀로 두고 외국으로 가야 하는 처지 등등

 

여자들에게는 어떻게 비춰질는지 몰라도
남자들에게 승민이나 서연이나 현재의 삶이 갑갑하기는 똑같이 느껴진다.

영화의 이 부분을 보는 남자들의 감정은

'썅년은 이혼녀가 됐고 나는 어리고 예쁜 여자와 결혼을 앞두었으니 통쾌하다' 따위가 절대 아니다. 
오히려 '35살이 되도록 여전히 별볼일 없는 나 자신의 초라한 현실'이 부끄러운 것이다.

 

내가 이 장면을 보고 대뜸 연상했던 노래가 동물원의 '시청 앞 지하철 역에서' 였다.

우연히 만난 첫사랑이 두 아이의 엄마라며 엷은 미소를 짓고는 나의 생활을 물었을 적에

'어딘가 있을 무언가를 아직 찾고 있다'라고 답할 수 밖에 없는 남자의 마음.

여자들이 그 심정을 알려나 모르겠다.

십수년만에 다시 만난 첫사랑에게 '나 이만큼 성공했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처지의 한국남자가 과연 도대체 몇명이나 될까?

 

이혼사실을 밝힌 서연을 바라보는 한국남자들의 심정은 절대로 복수심이나 우월감이 아니다.

나야 원래 그런 놈이었다 치고, 왜 너마저 이렇게 됐니? 하는 안타까움일 뿐. 

 

 

 

첫사랑 그녀가 별다른 이유없이 어느날 갑자기 남자를 찾아온다는 설정과 더불어,

이 영화의 현재 부분에는 남성판타지스러운 내용이 한군데 더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바로 엄태웅이 한가인에게 추가로 2층방을 지어주기 위해 애쓰는 장면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듯이 80~90년대는 이공계 전성시대였다.

입학성적이나 인기도 면에서 적어도 남학생들에게만큼은 공대의 인기가 최고였다.

그 시절 공대 건축과를 나왔다는 이용주 감독도, 영화 속의 승민도, 그리고 나도

모두 '그 시절 공돌이'들이다.

 

누가 공대생 아니랄까봐, 그런 공대 남자들이 꿈꾸는 로망 가운데 하나는

자신이 직접 만든 그 무언가로 그녀를 기쁘게 해주는 일이다. 

과거의 승민도 직접 만든 2층집 모형으로 서연을 기쁘게 해주려다가 종강날 그 사고를 친 것 아니었던가.

그리고 로망이란 것이 대부분 그렇듯 현실에서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현실의 그녀들은 반도체 웨이퍼로 만들어진 목걸이 보다는

(내 친구 중에 실리콘 웨이퍼로 목걸이 만들어 여친에게 선물했던 한심한 놈 실제로 있었다.)

이름도 욕지거리 같은 스와로프스키 목걸이를 더 좋아하게 마련이니까.  

 

 

피아노 놓을 방이 필요해. 제대로 된 걸로.

 

그런데 건축학개론에서는 그런 공대 남자의 로망이 실현된다!

잊지 못할 첫사랑 그녀가 인생을 리셋하기 위해 절실하게 방을 하나 더 필요로 하고,

승민은 바로 그걸 만들어줘서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상황이 도래한 거다.

모르긴 몰라도 공대 남자 인생에 이렇게 로망이 실현되는 순간은 평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다.

돈으로 사주는게 아니고, 사랑하는 그녀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뭔가를

직접 내 손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그 뿌듯함.

이게 판타지의 실현이 아니라면 뭐가 판타지겠는가? 

 

 

내가 할께... 내가 끝낼께... 그렇게 하게 해줘...

 

그래서 승민은 결혼이 코 앞이고 약혼녀에게 오해받을 위험을 무릅쓰고서도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공사를 끝내겠다고 우겼던 거다.

얼핏 보면 자신이 벌여 놓은 일이니까 자신이 끝내겠다는 사명감 정도로 해석되기 쉽지만,

사실 승민의 속마음은 '그녀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을 내 힘으로 만들어 주고 싶은',

공대 남자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감정으로 가득차 있었을 것이다.

어떤 블로거는 이용주 감독을 가리켜서 공대 출신답지 않게 섬세하고 예술적이라고 평해놨던데,

천만의 말씀. 이런 내용을 보면 이용주 감독도 어쩔 수 없는 공대 남자다. ㅎㅎㅎ

 

건축학개론 전체를 통털어서 소심하고 찌질하게 표현되는 승민이 제일 멋지게 나오는 부분이 어디일까?

 

 

 

순전히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서연에게 2층방을 만들어 주기 위해

현장에서 밤 새워 작업하는 장면들이 나열될 때가 가장 멋있었다.

저렇게 열정을 불태워 일하는 승민의 모습과,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빙그레 웃는 서연의 모습.

이거야말로 공대 남자의 로망 실현 그 자체다.

 

확실히 남자는 땀 흘리며 열정적으로 일할 때 가장 멋있다.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서라면 더욱 더.

 

 

 

건축학개론에 대하여 비판적인 사람들은 영화에서 그 정도 남성판타지도 수용할 수 없었던가 보다.

'남자가 지어준 집'에 여자가 계속 살게 된다는 점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리뷰들이 종종 있다.

마치 남자가 만들어 놓은 우리 속에 여자가 갇혀서 사육되는 것처럼 느껴지나 보다.

이공계 남자인 나로서는 도무지 상상조차 안되는 그런 해석을 접할 때마다

역시 남자와 여자의 사고방식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건축학개론에서 재회한 승민과 서연은 결국 또 다시 이별하게 된다.

한번만 이별해도 슬픈게 사랑 영화인데,

과거 현재 공히 감정의 엇갈림 때문에 두번이나 이별하게 되면서

두 사람은 인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사살까지 하게 되니 영화가 더욱 슬프지 않을 수 없다.

 

두번째 이별은 건축학개론이 다른 사랑영화와 상당히 차별화 되는 점이다.

보통 슬프게 이별할 수 밖에 없었던 첫사랑과 대비되는 '현재'는 해피엔딩인 경우가 많다.

재회해서 사랑을 재확인 하던지, 하다못해 그 아들 딸끼리라도 맺어져서 사랑의 결실을 보곤 한다.

그런데 건축학개론에서는 또 슬프게 이별한다.

달달한 헤피엔딩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럴거 뭐하러 재회시켰냐'고 불평할만도 하다.

 

 

 

이용주 감독의 어느 인터뷰를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관객들이 영화의 현재 부분에서 승민과 서연이 다시 잘 되리라 기대할 거라고는 짐작도 못 했다는 것이다.

건축학개론에 호의적인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은,

승민이 약혼녀를 버리고 서연과 재결합 하기라도 했다면

영화가 순식간에 막장 아침드라마가 되면서 완전히 망가져 버렸을 거라는 예상이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건축학개론의 본질에 관한 언급들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한가지는

'이 영화는 첫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첫사랑을 제대로 정리하는 이야기'

라는 것이다.

건축학개론 전체 스토리의 핵심을 정확하게 짚어낸 지적이다.

첫사랑 영화의 현재 부분은 처음 언급한대로 과거의 첫사랑을 거울처럼 비춰 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현재에 비춰진 첫사랑을 되새기면서 오해를 풀고 정리하는 것이 영화의 주제인데

거기서 느닷없이 첫사랑과 재결합 해버리면 영화 꼬락서니가 어찌 되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승민과 서연의 사이는 현재에서조차 해피엔딩이어서는 안 되는 거였고,

건축학개론의 중심은 재회한 현재가 아니라 15년전의 첫사랑 그 자체였으며,

현재의 재회에 너무 촛점을 두고 보면 영화가 이상하게 비춰지는 거다.

 

이용주 감독은 같은 인터뷰에서 '나는 드라마 거의 안 본다'라고 의미심장한 발언을 하고 있다.

내 짐작에 불륜 코드로 점철된 막장 드라마에 중독된 관객들이

건축학개론의 현재 부분을 터무니없는 기대에 차서 관람하다가

결국 승민과 서연이 다시 이별하는 것을 보고 불평하는 것이

감독 입장에서 상당히 불만스러웠나 보다.

아들과 함께 건축학개론을 봤다는 어느 중년 여성이

이 영화를 '불륜이 시작되는 과정을 묘사한 영화'로 규정하는 것을 보면

오늘날 범람하는 막장 코드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염되어 버렸는지 알 수 있다.  

제발 드라마 고만들 좀 봐라, 응? -_-;;;;

 

 

 

물론 그런 오해가 전적으로 관객들의 탓만은 아니다. 상업영화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개봉 당시 건축학개론의 예고편이나 TV의 영화소개 프로그램을 보면

'재회한 첫사랑 두 사람은 어찌될 것인가?'하는 궁금증을 마케팅 포인트로 강하게 내세우고 있다.

그런 예고편이나 소개편을 보고 극장으로 향했던 사람들이

결국에는 별다른 극적 사건없이 도로 이별하는 결말을 보고 투덜거렸다고 해서

무작정 탓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영화의 결말에 대하여 불만스러워 하는 리뷰 가운데 재미있었던 것은,

영화가 히트했으니까 속편 '건축학개론 2'를 찍어야 한다면서,

서연 때문에 흔들린 승민이 미국에서 은채와 이혼하고 제주도로 서연을 다시 찾아와..블라블라

하는 내용이 되어야 한다는 농반진반의 우스개 소리였다. -_-;;;;;


결국 건축학개론의 현재 부분에 대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이 영화의 현재 부분은 그 자체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는 거다.

현재는 과거의 빛나는 첫사랑을 회상하는 계기가 되고,
상대적으로 비교해서 과거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과거에 미흡했거나 끝내지 못했던 첫사랑을 마무리 짓는,
그저 '보조장치'에 불과하며 영화의 핵심은 '과거'에 있다.

'현재'에 너무 비중을 두고 이 영화를 읽으면 건축학개론은 

재회한 첫사랑 스토리를 전개하려다가 어정쩡하게 끝내버리는 별볼일 없는 영화가 되어 버린다.

그렇게 영화를 보고 불평하는 관객들은

도대체 왜 옆자리의 저 사람이 이런 별볼일 없는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철철 흘리는지

이해하기가 조금 어려울 거다.